공간은 실제로 말을 한다. 공간은 그 속에 관련된 유아·교사·부모의 학습에 대해 알게하고 또한 학습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사람과 공간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우리는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우리의 가르치기와 배우기는 적절한 환경이 지원될때 상승작용을 이루기 때문이다. 레지오 학교의 환경 원리를 적용하여 우리 색깔이 있는 공간을 만듦으로써 유아·교사·부모의를 위한 학습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자 노력해 온 공동체 기관들과의 현재까지 변형 여정과 내용을 소개한다. 이러한 되돌아보기는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의 적용과 변형 유아교육과정」에 이어 공간과 매체가 교사와 유아의 가르치기와 배우기에 미치는 영향을 반성하고 재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적용과 변형의 수준을 만일 실체론적, 구조론적, 상징론적 수준의 척도로 본다면, 이 책을 위한 기록과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10여 년간 우리네 기관 환경의 적용과 변형 수준은 겨우 개념을 실체로 옮기는 실체론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거의 2년간에 걸쳐 몇 차례 원고 다시보기를 하면서 기능론적 단계에 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우리 나름의 환경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가 생긴 것일까?

나라마다 서로 다른 지리 조건, 기후 풍토, 역사 등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건축의 공간개념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 왔다. 특히 이탈리아와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내부와 외부 공간을 한정하는 경계의 방법, 그 존재에 부여하는 의미, 공간을 한정하는 영역에 대한 생각이 사뭇 다르다. 일본의 대 건축가인 Ashihara Yohnobu는 이탈리아 광장을 처음 보았을 때 단단한 석족 벽으로 둘러싸인 광장의 외부 공간이 마치 지붕 없는 실내 공간처럼 느껴졌다고 하였다. 여기에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이 조화를 이루는 게슈탈트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탈리아식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만나는 건축 전통과 뛰어난 예술성은 세계 건축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전통과 예술성은 현대적이고 기능적인 시각으로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학교에 반영되었다.

우리가 연차적으로 방문하였던 미국과 상해에서 만난 레지오에 영감을 받은 유아학교들은 또 그렇게 나름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살아 있고 우리 고유의 인간미와 정체성이 느껴지는 의미 있는 환경이 필요함을 공감한다. 그것은 독립이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며, 인간을 중심에 둔 환경에 대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

본서에서는 환경디자인에서 인간을 위한 공간을 디자인할 때 흔히 말하는 인간공학(interior ergonomics)이나 인간 요소(human factors)에 준한 유아교육 환경에 초점을 두지는 않았다. 유아교육기관의 환경을 디자인할 때는 위생, 안전, 기능, 쾌적함, 심미적 즐거움 등과 같은 요소들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인간이 기능하는 이상적인 환경 조건을 위한 빛, 색, 음향, 온열, 가구 환경을 '왜',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하는 심리학적이고 생리학적인 부분이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저자의 식견은 제한되고 부족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가장 기초적인 내용들만을 다루었다. 이 중요한 부분은 환경 디자인 전문가들의 몫으로 돌린다.

이 책의 1장에서는 레지오를 만나면서 환경뿐 아니라 교육전반에 있어 우리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짚어보았다. 2장에서는 레지오 학교의 환경원리를 우리의 언어로 해석하였다. 이와 함께 실내 환경 구성의 요소, 보육공간의 지침, 공간구성의 원리 등에 대한 기초 수준의 TIP을 더하였다. 3장은 학습과 표상을 위한 다매체 활용을 위해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들을 다루었다. 4장은 학습공동체 기관들과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환경을 변형하기 위해 그 동안 우리가 해온 시도들을 순차적으로 정리하였다. 5장에서는 공간과 매체 활용으로 나누어 현재까지의 변형 내용을 분석하였다. 6장은 학교전체를 피아자, 교실, 아뜰리에 공간으로 구분하여 영역별 공간 만들기와 매체 활용하기를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