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재활학 박사과정 유학 중 현지의 자립생활운동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복지가 제공자 위주의 시혜적 복지에 그치고 있었고, 시설수용 위주로 이루어지던 터라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운동이 장애인의 삶을 의미 있게 바꾸어 나가는 큰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되었다. 마침 유학기간 내내 KBS1 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이라는 프로그램의 미주 통신원을 하면서 우리보다 복지선진국인 미국의 장애인정책들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자립생활패러다임(independent living paradigm)을 소개할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들어와 장애인복지신문에 기고 중이던 <김종인의 재활탐구>의 내용들을 '희망은 장벽을 넘습니다'라는 단행본으로 엮어 출판하였는데, 미국에서 취재하고 공부하였던 장애인의 자기결정과 장애인의 자조, 정치세력화 등 자립생활패러다임을 자세히 소개할 수 있었다. 소비자로서의 장애인들과 각 장애접근지원센터, 친(親)장애문화와 권익옹호활동, 동료상담사의 활동, 발달장애지원센터, 장애인 공동주택과 컨슈머(consumer)로서의 복지주권 등 장애인당사자들이 국가 및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국가에서는 어떠한 법･제도 등으로 지원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 자립생활운동이 이처럼 빠른 시간에 자리 잡게 될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 장애인복지정책의 방향은 장애인들을 개별적 손상이나 기능상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의료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을 지역사회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정상화(normalization)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통합적인 관점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제 장애인복지 분야는 더 이상 시혜나 동정이 아니라 권리의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복지는 개별적･자선적 접근에서 사회적･제도적 접근으로 한 단계 발전되어 왔다. 특히, 장애인복지의 정책적･실천적으로 장애인당사자를 중심으로 한 자립생활이념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자립생활운동은 일본을 거쳐 19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것이 장애인복지패러다임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며, 그 결과 자립생활패러다임이 장애인복지에서 중요한 이슈(issue)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인복지법｣ 안에 자립생활에 관한 조문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우리나라에 자립생활센터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0년을 기점으로 정립회관에서는 ‘동료상담가’를 양성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배출된 중증장애인들이 ‘자립생활센터’를 하나둘씩 설립하였다. 같은 노력으로 지금은 전국에 200여 개소의 자립생활센터에서 자립생활운동이 실천되고 있으며, 지역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장애인당사자 주체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복지전달체계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립생활센터의 설립과 함께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시설이나 가정의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로 나오기 위한 다양한 권익옹호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제정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현재 ‘장애등급제 폐지’를 통해 선진적인 장애인정책과 제도를 만들자는 외침으로 발전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자립생활센터(center for independent living)가 5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15년이라는 단기간에 갖추게 된 것은 '희망은 장벽을 넘는다'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다 보니 현실적으로 좀 더 가다듬고 체계를 잡아야 하는 문제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중 하나로 10년 넘게 지원되고 있는 자립생활센터의 재정이 여전히 시범사업으로 존속되고 있어, 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하는 데 예산부족이나 절차 등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한 체계가 미흡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의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지역사회서비스 전달체계로서 법적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장애인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립생활센터의 소장으로, 동료상담가로, 사회복지사로서 현장에서 직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고 있거나 앞으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자립생활센터에서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체계적으로 접근을 할 수 있는 자립생활개론이나 실무지침서는 지금까지도 없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김재익 박사와 함께 2013년부터 '자립생활실천론'을 집필하게 되었다. 물론 자립생활개론이 먼저 나오는 것이 좋겠으나 전국에 약 200여 개에 가까운 자립생활센터 현장의 다양한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그 체계를 잡아서, 지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립생활센터 실무자들에게 먼저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립생활센터의 법적지위가 확보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후속으로 자립생활개론서를 집필하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여 만든 '자립생활실천론'은 전체 1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장~4장은 자립생활의 철학과 개념, 패러다임의 전환, 자립생활운동의 기원, 자립생활센터의 특성과 역할 등 이 부분에서는 주로 이론적 특성을 설명하였으며, 6장을 제외한 5장부터 14장은 자립생활서비스인 동료상담, 자립생활기술훈련, 정보제공, 주거지원, 소득보장, 고용지원, 보조공학, 활동지원사업 등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였고, 6장은 자립생활센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른 장애인복지 단체와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권익옹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전국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현장에서 서비스를 진행할 때 필요한 서식을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이 책은 현재 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면서 실무상의 어려움을 갖고 있는 장애인당사자를 위한 이론 및 기술을 위한 지침서 그리고 자립생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자 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재로 쓰기 위해 저술하였다. 알기 쉽고 평이한 문장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자립생활의 이념과 철학을 정리하고, 그것을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여러 사례를 제시하였다.